우연과 필연 – 하나은행과 네잎클로버

우연과 필연 – 하나은행과 네잎클로버

By on 2015-02-25 in Brand Column | 0 comments

포병장교 시절의 나폴레옹이 자신의 발밑에서 우연히 발견한 네잎클로버를 보기 위해 허리를 굽히다가 적군의 총탄을 피하게 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후 네잎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우연이 행운으로 연결된 사례입니다.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할지라도 그것을 우연으로 보아야 할까요? 필연으로 보아야 할까요?

하나은행과 네잎클로버

하나은행 네이밍을 했던 가물가물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1971년 설립되었던 한국투자금융주식회사는 1991년 은행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게 됩니다.

당시 사회 초년병이었던 본인도 본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지요. 사명변경 일정은 많지 않았고, 한국투자금융의 요청 방향은 명확했습니다. 당시 CEO와의 인터뷰에서 들었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본의 어느 지방은행이 전국은행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사명을 ‘토마토뱅크’로 바꾸었습니다. 독특한 사명과 더불어 각 지점 인테리어 컨셉은 ‘토마토’였습니다.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하여 고객이 지점 안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토마토가 매장 여기저기에 달려 있는 스타일이었죠. 심지어 방문한 고객에게 토마토를 대접하기까지 했습니다 …

3년 만에 토마토뱅크는 전국은행으로 발돋움했습니다. 지금 한국투자금융에 필요한 것은 그러한 ‘차별화’입니다. 아무리 빨리 전국지점을 개설해도 기존 은행에 비하면 모든 면에서 열세입니다. 그러한 한계를 차별화를 통해서 극복하고 싶습니다 …”

당시 제가 다니던 회사에서 추천했던 몇몇 네임 중에 유자(User, 柚子)은행도 있었습니다. 유자차를 나눠주거나 유자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자는 제안이었죠. 그렇지만 가장 선호도가 높았던 후보안은 ‘아카시아 은행’이었습니다.

‘아카시아 은행’은 인테리어 컨셉 뿐 아니라 아카시아 향을 매장 내에 뿌리기도 좋고 아카시아 벌꿀 등 다양한 판촉이 용이한 네임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소 낭만적인 느낌이 드는데다가 발음도 용이하고 91년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네임이었기에 모두가 선호하는 후보안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신규 은행명은 ‘아카시아 은행’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다음 CI 디자인 방향을 협의하기 위하여 다시 아카시아 은행 임원진과 협의를 하는 미팅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명개발, 보고, 선정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던 어떤 임원 한 분이 발언을 요청하셨습니다. 그 분은 본인이 사명을 확정하는 날 왜 참석하지 못했는지 설명하는 것으로 본인의 의견을 말씀하셨습니다.

“하필이면 그 날이 어머니 기일이었습니다. 산소에 술이라도 한 잔 부어드리고 출근하려고 새벽에 산소로 갔습니다. 그런데 산소에 도착해 보니 망할 놈의 까시나무가 왜 그리 많던지… 그냥 올 수 없어서 뽑다 보니 늦었습니다. 그래서 사명을 확정하는 그 날,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이어 그 임원 분은 까시나무의 폐해에 대해서 장황하게 이야기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본다면 아카시아 나무는 까시(가시)나무로 바뀌고, 그렇게나 좋았던 아카시아의 이미지는 온 산을 망치고 다른 나무조차 자라지 못하게 하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까시나무의 이미지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낭패의 표정이 되었습니다. 아카시아은행으로 행명을 결정한 것에 대한 불안, 걱정, 후회가 많은 분들의 얼굴 속에 나타났습니다.

이에 CEO께서 급하게 네이밍 보고서를 다시 가져오라 하셔서 나머지 후보안 중에 선정할 만한 것이 없는지 재토의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주목받지 못했던 ‘하나은행’이 급부상하였고, 20년이 지난 지금, 자산규모 100조가 넘는 국내 4위의 은행의 행명이 되었습니다.

후일담도 있습니다.

아카시아은행처럼 부정연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여 급하게 몇몇 언어로 ‘하나’의 문제점이 없는지 살펴보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몇몇 언어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스코틀랜드 (게일어)에서는 ‘하나’가 ‘돈이 없다’는 의미라는 답변이 들어왔습니다. 먼 훗날에 스코틀랜드에도 지점을 낼 것인가? 하고 행장님이 임원진에게 물어 본 내용이 기억에 남는군요.

더 나아가 당시 대동은행, 한성은행 등 타 행장님들이 하나은행 행장님과 통화하는 과정에서 “돈이 하나도 없는가? 빌려 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받침이 없는 ‘하나’라는 단어는 힘없는 은행, 약한 은행으로 비추어진다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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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 네이밍 과정은 ‘우연’의 소산입니다.

처음 설정하였던 차별화는 사라졌고, 부정 연상이 대한 두려움이 컸던 프로젝트였습니다. 물론 당시로서는 한글 행명이 상당히 파격적이긴 했습니다. 보람은행이라는 다른 행명의 탄생을 유도한 측면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만약 당시 해당 임원이 어머니 기일 날 산소에 방문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하나은행은 ‘아카시아 은행’으로 불리고 있을 것입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네이밍의 세계도 이와 같은 우연이 결론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은행은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알고 있는 은행이기에 쉽게 인용되었을 뿐 또 다른 네이밍 과정에서도 그러한 사례는 종종 나타납니다. (말하기 어려울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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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결과는 ‘필연’이 됩니다. 행동을 수반한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폴레옹이 네잎클로버를 따기 위해 몸을 굽히지 않았다면 그는 총에 맞아서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안 죽었다 하더라도 큰 부상을 입었을 가능성은 있지요. 몸을 굽히지 않았어도 총알에 안 맞았을 가능성도 물론 존재합니다. 총알이 1cm 비껴갈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는 몸을 숙였고 덕분에 죽기 않았다고 생각했을 수 있고, 네잎 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하나은행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0여 년간 하나은행은 탁월한 경영능력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나폴레옹과 네잎 클로버 사례처럼 대한민국 4위의 은행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우연의 결정들도 있지 않았을까 추정합니다. 경영능력과 행운이 모여서 하나은행의 실체와 이미지를 형성하였고 좋은 결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우연이 필연이 된 것 중의 하나가 ‘행명 결정’입니다. ‘하나은행’의 행명은 지금 생각하면 네잎클로버처럼 행운의 상징이 된 네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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